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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치열함과 느슨함, 그 사이의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그대에게..

by 분석몬 2018. 11. 26.

아마도 대부분 꿈많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말그대로 혼과 신을 다한 시간들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더 높은 확률로 소위 말하는 이불밖을 나가기조차 싫은 나태함에 온몸을 흠뻑 던졌던 시절은 더 많을 것이다.

 

당연히 잠과 핸드폰, 공상 등으로 시간의 무게가 즐거이 채워졌었고, 정신의 상쾌함은 중독적이리만큼 가뿐했으리라.

clear-life
방황

그러나 결국 시간은 흐른다.

 

계속해서 열정적일 수도, 그렇다고 한없이 늘어져 있을수 만도 없는 것이 우리네 '평범한' 이들의 인생이다.

 

'평범한' 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평범함을 뛰어넘는 비범한 열정 혹은 세기말적 늘어짐으로 그대의 인생을 채워왔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그대는 이미 중독자이리라.

 

그런 이들은 대개, 미친듯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있으면 유한한 시간이 손바닥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자신을 한없이 매정하게 몰아부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다.

 

아니면, 지친 몸과 다친 영혼 때로는 무기력한 패배주의에 익숙해져 작은 방 그안에서도 내몸하나 덮을 천조각 아래서 심정적인 자위에 빠져있을지도..

 

이제 다시 우리 보통의 사람들 삶을 바라보자.

 

괜찮다.

 

원래 그렇게 한없이 달리기도, 때로는 완주 끝에 늘어진 누군가처럼 드러눕기도 하는 극단을 오고가는 왕복 달리기 혹은 그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기도 하는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러니 괴로워말라.

 

가장 큰 괴로움 중 하나는 항상 반대쪽을 그리워하느라 현재의 시공간을 즐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는데, 설령 그것이 거창한 전인류적인 사랑이 아니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이달의 카드값을 막기 위해 그저 나의 몫을 다하고 있는 것뿐일지라도 괜찮다.

 

그 시간도 소중하다. 그런 노력 혹은 희생의 가치가 있어 다른 삶의 시간들이 빛나는 것이라면 진정 그 시간을 귀하게 대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한탄치 말라. 그 힘듦의 시간마저도 존중하고 아껴주라. 물론, 그것이 그대의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혹여나 열심히 일하면서, 클럽에서 느끼던 짜릿한 밤, 친구 및 가족과의 담소 그리고 이불안 안락함이 그립고 생각나서 미치겠다면 당신의 그 평온함은 더욱 멀어질 뿐이다. 그것이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의 결과이든 성실한 무기징역수의 삶처럼 어쩔수 없는 시간이든 감내해야 한다면 집중하여 감내하라. 그래야 그 시간이 마침내 당도했을 때 100% 늘어질수 있다.

 

하여, 즐거운 위안의 순서가 돌아와 드디어 휴식중인가? 그런데도 자꾸만 아까 마치지 못한 일들, 직장에서 후회되는 언사 그리고 내일있을 발표 때문에 충분한 이완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 역시나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김치찌개를 그리워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돼지이자 어리석게도 늘상 반대쪽을 탐미하는 욕심쟁이에게는 영겁의 시간이 주어져도 행복하지 못하다. 그저 그렇게, 그립고 아쉽고 걱정만하다 흘러가는 것이다.

 

진정, 오롯이, 빠져들라.

 

그것이 열정 아니 그에 못미치는 꾸역의 낮이든, 충전 아니 그에 못미치는 휴전의 밤이든 그냥 만끽하라. 어리석게도 반대쪽을 탐하며 아쉬움의 감정으로 하루를 일년을 일생을 채우면, 결국 삶의 마지막 순간에 회한만 가득할것이다. 매시간 매순간 자신이 선택하여 만든 공간의 삶이라면 충분히 존중하고 아껴주고 견디며 사랑하자.

 

그것이 대혁명의 기적이 아닌 평범한 우리네 삶에서 지금당장 현실적으로 느낄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자 확실한 처방이다. 부디 그대에게 평온과 즐거움 그리고 만족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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