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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명상과 글쓰기

by 분석몬 2018. 10. 15.

명상이라는 단어는 보기만해도 신비스러움이 묻어난다. 

 

저절로 어느 고즈넉한 절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삼매의 경지에 노니는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 특히, 실제로 명상을 배우거나 스스로 그 방법을 터득한 이들에게는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 행위를 겪으면서 수없이 차분해졌던 경험과 고난했던 과거에 대한 갈무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다짐들이 동시에 스쳐가기 때문이다. 나역시 더없이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로 대학교때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며, 더 열심히 연애하고, 꾸준히 명상을 익히던 시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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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

자연스러운 호흡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을 전해주는 명상은 빠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조장되고 있는 현대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느리고 차분히 그렇지만 꾸준히 한호흡 한호흡을 마시고 내뱉고 그러면서 마음의 자리를 잡아가며 집중하는 느낌은 미흡한 활자로는 다 전하기 힘든 고대의 보물과도 같은 진귀한 과정이다. 어느새 잠잘때와 시력검사를 할때를 제외하고는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은 깨어있는 시간이 하루 24시간 중 1분도 되지 않는 바쁜 일상의 미련함 속에 있기에 명상은 구태의연한듯 눈부시게 새로운 찰나의 축적이다.

 

그러나 그 명상의 과정이 반드시 가부좌를 하거나 무술의 과정을 통해서만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대스승님의 말씀처럼 고매한 숲속이 아닌 칠퍽한 삶속에서도 진흙속에 피어나는 연꽃과 같은 깨달음이 있다. 중요한 것은 현실 속에서든 상상 속에서든 삶에 대한 자세와 마음가짐이다. 수많은 경험들 속에서도 밝음과 어두움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이 없거나 결코 충족되지 않는 물욕과 성욕만을 추구하면서 몸과 마음을 수련한들 본연의 깨달음의 경지와는 거리가 멀다고도 한다. 

 

이러한 명상이 글쓰기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깊이 있는 문장을 담백하고 표현하는 문호들의 글과 삶을 살펴보면 수많은 고난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 그리고 이에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통찰력이 풍부한 그 무엇이 있다. 이를 모두 일반화 할수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 명상의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매일매일 꾸준히 그리고 차분히 글쓰기에 정진하는 모습은 지금 당장 바로 손에 잡히는 것은 없을지언정 스스로의 삶의 자세를 갈무리하는 명상의 그것과 무척 닮아 있다. 또한, 명상의 많은 고비마다 한없이 부족함에 느껴지고 흔들릴 때 앞서간 선사들의 가르침에서 몸과 마음의 정진을 지속하며 본질적인 자아를 찾아가는 모양도 세기를 넘나드는 고전 읽기 및 필사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여 한단어라도 써보는 글쓰기의 과정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문명의 수많은 이기들이 나오고 삶을 편리하게 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바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이다. 그 생각과 표현의 방법이 정중동인지 글쓰기 중 깨달음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스스로를 정진하는 고난함 속에서 발전하는 맛을 볼수 있는가 그리고 지속할수 있는가이다. 이는 전술한 비인간적인 요소들로 채워질수도 채워져서도 않되는 위대한 인간의 능력이자 유산이다.

 

얇삽한 기술과 자극적인 말들로 독자를 유혹하려는 태도의 연속은 몸과 마음을 중독시켜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클럽의 약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의 지루함을 지나 한번의 변화를 찾을수는 있지만 그 끝이 비참함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지루한듯 일상적인 한모금의 물이 우리들 삶을 지속시키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인 것처럼, 자아와 세상에 대한 진솔한 생각과 고유의 표현들이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명상의 구결과도 같다.

 

티벳의 어느 명상의 고수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공중부양도 한다고 한다. 실제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글쓰기의 시대적인 고수도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대문장과 저서를 남긴다. 이는 수많은 고전들에서 증명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간의 삶에 있어 한숨의 들어마심과 내시는 호흡들이 모여 시간이되고 역사가 되어왔다. 흥분하여 헐떡이고 싶은가? 계속 그럴수는 없다. 죽기 직전의 인간들이 그런 모습을 많이 보인다. 물론 남녀의 정사과정에서도 그럴수 있지만, 하루 중 아니 일생중 그러한 시간의 모음은 그밖의 초침들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글쓰기로 삶의 방향을 잡은이라면 혹은 글을 쓰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라면 무릇 한글자 한문장 한문단의 구성에 있어 신중하고 일관된 노력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러한 형식적인 구성의 기초에는 당연히 명상의 결과물들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것이다. 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라. 그렇다면 당신은 명상의 과정 중에 있다. 일생을 거쳐 지속될 귀중한 깨달음의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힘든것도 당연하고, 보람있는 것도 당연하다. 글쓰기는 명상의 결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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